본문 바로가기

소설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의 4대를 이어오는 분단국가에서 여성들의 삶을 그린 <밝은 밤>을 읽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최은영의 서정적이고 세밀한 언어들이 7편의 소설에 아름답게 축적되었다. 소설들은 무너진 관계들 속에서도 희미한 빛을 찾아내 "더 가보고 싶도록" 독자에게 연대의 손을 건넨다. 최은영 소설의 특징은 거의 여자들이 주인공이듯이 다정하지만 외롭고, 아름답지만 슬프기도 한 장면들이 모여 경건함을 자아내는 소설집이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담긴 7편의 중단편은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하다가도 어느 순간 이야기의 부피를 키우면서 우리를 뜨거운 열기 한가운데로 이끄는 몰입력과 호소력이 돋보인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통해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삶의 모방을 하는 존재이며, 비정규직의 모순되고 부당한 차별을 보여준다. 그리고 용산이라는 공통된 지명을 통해 우리 시대의 그 아픔을 공감하고자 한다.

  <몫>의 주인공들은 어디 갔을까. 70.80년대 대학생들이 보여주고자 했던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피 끓는 청춘들은 어디로 갔을까. 밤을 새워 토론하고 편집했던 그 열정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날지 못하는 새가 될 뿐이다. 그러니, 일제강점기에 목숨 바친 이들이 얼마나 숭고한 정신을 가졌을까.

  <일 년>이 독자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계속된 호의는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전환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힘든 사실을 사실적이고 섬세한 스타일로 설명하고 있다.

  <답신>이 주는 메시지는 언니의 보복이다. 교련 선생은 언니를 '그루밍'으로 성의 노예로 만들고 결혼 후에도 언니처럼 다른 여학생에게 손을 댄다. 학교에 폭로하지 않았는데 누군가 다른 사람이 폭로했는데, 언니가 폭로하고 동생에게 누명을 씌우고 형부를 죽이도록 무의식적 교사를 한다. 무섭다. 살인죄로 복역 중인 동생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가정을 지키려는 언니의 행동은 복수의 칼을 숨긴 무서운 여자다.

<파종>소리와 엄마는 삼촌이 일구던 밭을 다시 일구며 그의 흔적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리운 마음을 함께 해본다. 그러나 파종은 의도된 무엇인가를 남기는 행위이다. 파종이라는 행위에는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위한 새 출발을 의미한다.

<이모에게> 명문대의 결과적인 허상을 보여주며, 나은 정보다 길은 정이 깊다고 한다. 늙어가는 희진 본인의 모습에서 길러준 이모의 잔재를 찾고 깊은 회한을 느낀다. 이모는 희진을 딸처럼 길렀는데.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헐값에 어린 막내를 팔아버린 가족. 식모살이로 성장한 기남은 홍콩에 사는 둘째 딸 우경이 자식임에도 불편하다. 옛날 야학을 할 때 학생들 중에 공장에 다니거나 식모살이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이 검정고시로 대학을 가기도 했다. 그들은 힘겹게 살면서 가족들을 부양하면서 살아왔다. 우리의 경제는 그들의 힘으로 버텨냈는데 그들의 자식들은 어머니를 이방인 취급을 하곤 한다. 먼 가족보다 이웃사촌이 더 가깝고 정겹다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관계의 밀도에 따라 행복과 불행사이를 방황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허울뿐이고, 친밀함 속에서 낯섦이 돋보이고, 낯섦이 정겹고 고마울 때가 있다. 오늘날 가족의 힘은 붕괴되어가고 있고 살아있음의 원동력은 가족을 벗어나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1) 2023.12.20
조정래 '아리랑5'  (0) 2023.12.12
생텍 쥐페리 '어린왕자'  (0) 2023.12.04
윌리엄 세익스피어 '로미오와 쥴리엣'  (1) 2023.12.04
윌리암 세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1) 2023.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