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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김수현 '착한 이기주의자 선언'

김수현
'착한 이기주의자 선언'
당신의 호의에도 가시가
필요하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강남에서 피부과 의원을 경영하기도 했던 김수현의 <착한 이기주의자 선언>을 읽으며 많은 공감을 느꼈다. 착해서 이용당하고 순진해서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아파도 아픈 척하지 못하는 마음은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은 교묘하고 치밀하게 그런 성격을 가진 자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녀는 완벽주의였기에 더 힘들고 빨리 지쳐갔으며 결국에는 소진(번아웃)되어 이혼하고 병원을 폐업하기로 결정했다. 어디서나 JS(진상)이 존재한다. 자기 아이는 잘못이 없다고 담임 선생님을 찰거머리처럼 달아붙어 녹초가 되게 하는 요즘의 진상 엄마들 - 오죽하면 생을 마감할까 - 대한민국이 어찌되려고 그러는지 통탄할 일이다. 교대가 미달이고, 진상 민원인 때문에 공무원도 생을 마감하고 그 높던 공시 경쟁율이 바닥을 치고 있지 않고 있나.

  전문의 김수현은 큰딸이 장애인으로 그녀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 그래도 그녀는 하나님의 선물이자 축복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딱 한 마디를 했다. '장애인을 가진 엄마의 심정을 안다고 하지 말라' 내가 아는 장애인 엄마 둘이 있다. 너무 힘들어 의지할 곳은 술, 담배 뿐이라고. 장애인들의 영혼은 정말로 깨끗하고 순수하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다는 것이다.

  법정 스님의 글도 인용하고 있다. "기쁨을 나눴더니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눴더니 약점이 되더라. 진실은 진실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나도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지금은 연륜이 있고 거절할 명분이 있지만 예전에는 남의 부탁으로 곤란을 겪은 적이 많았다. "우리를 정말로 힘들게 하는 것은 한 가지 큰 일이 아니다. 남들을 실망시킬까 두려워 거부하지 못하는 수천 개의 작은 의무들이다." 알랭 드 보통의 말이다.

완벽주의의 삶을 포기하고 모든 걸 내려놓는 고통은 경험해보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내 자신도 "완벽주의로 부터의 도피"를 위해서 엄청난 노력과 내 자신의 허탈감을 느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그녀도 삶의 버거움을 산책과 등산에 찾았다. 그리고 독서도 그녀의 위안이 되기도 했다. 나는 삶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운동에 집착했다. 자전거 국토 종주, 국제 인라인 스케이트 대회 참가, 그리고 마라톤 풀코스 수십 번 참가 등 땀을 흘리며 독소를 빼내곤 했지만, 사색할 시간이 없다. 스피드에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산책과 등산을 통해 혼자 있을 때 외롭지 않고 나 자신을 삼가하고 조심했다. 신독(愼獨)에 힘쓰다 보면 나 혼자 있을 때 외롭지 않았다.

  이기주의라는 의미는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고 나를 사랑하고 내 마음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것을 그녀는 착한 이기주의라고 한다. 그녀가 내린 결정 하나 하나에 경의를 표한다. 그녀가 병원을 폐업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녀의 두 귀여운 딸을 남겨두고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거의 그랬을 것이다. 내 자신도 그랬으니까.

  270여쪽이 되는 그녀의 글에 그녀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고 그녀의 글은 착해서 손해보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강연사로써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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