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린 '엄마의 집'

누군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책에 집착하는지를. 사람들이 노래방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영화 또는 뮤지컬을 보고 희열을 느끼듯이 나는 책이 도피처이며 안식처다. 50년 이상을 매년 몇 백권씩 읽고 있지만 왜 책을 읽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한 적이 없다. 다만, 잡을 수 없는 진리와 즐거움이 있고 작가에 대하여 알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서향에 중독되어있다.
지금은 그녀의 이름조차 잊었지만 - 죄스러운 마음 뿐이다 - 대학시절에 알바하면서 일주일에 2권씩 정성어린 선물을 하곤 했던 여인이 생각난다. 나의 책에 대한 집착으로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우리는 교보문고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인상깊거나 좋은 책은 두번, 세번씩 보기도 하지만 10번씩 정독을 한 책도 있다. 올해도 그런 책들을 다시 읽어볼 예정이다. 또한, 작가에 빠지면 그 작가의 책은 거의 모두 읽는 편이다. 조정래, 김성종, 이수광, 이문열, 그리고 전경린의 책이다.
전경린의 <황진이>, <열정의 습관>을 읽고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은 대기 중이다. 그녀의 문체는 아름답기도 하고 자연이나 사물의 묘사는 향기같은 언어로 묘사하고 있고, 깊은 심리묘사를 편안히 접할 수 있도록 친근감있는 필체로 엮어냈다.
40대 중반의 이혼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호은이는 어느 날 아빠가 홀연히 나타나 중2 승지(재혼한 여자의 딸, 승지의 엄마는 죽었다)를 맡기고 가버린다. 호은의 엄마는 승지를 데려다 주기 위해 아빠의 집을 찾아가지만 집은 비어 있었다. 어쩔 수없이 함께 살아가지만, 끈끈한 정을 느끼고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엄마는 호은이를 위한다면 애인도 잊겠다는 신념으로 딸을 아끼고 사랑한다.
세 여자의 동거는 삼각구도로 자칫 단조로운 소설의 흐름을 완벽하게 맞추고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3을 숭상해왔다. 고구려의 시조새 삼족오 였듯이, 적절한 구도를 이끌어 장편소설을 단편처럼 구성했다. 피 한방을 섞이지 않았지만, 한정된 시간이 그들을 언니, 동생으로 귀결짓게 된다.
아무도 역사밖으로 도망칠 수 없다. 역사와 개인의 행복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시간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개인은 행복의 바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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