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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김남희 '유럽의 걷고 싶은 길'

김남희 '유럽의 걷고 싶은 길'

  여행은 우리의 삶에 풍부한 지식과 낯선 곳에 대한 향수를 채워주는 길잡이다.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힐 수도 았지만 무엇보다도 여행은 우리들의 삶의 번아웃(소진)시기에 에너지를 충족시켜주고 인자한 마음을 갖게 해준다. 우리는 왜 여행을 하는 가? 그것은 한마디로 정의 할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잡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외국으로의 여행은 미국(잠시 공부하러)과 몇년 전에 다녀온 베트남 다낭이 전부다. 그러나, 베트남을 다녀온 느낌은 기대에 걸맞지 않았는지 외국의 여행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도보여행가 김남희의 <유럽의 걷고 싶은 길>을 읽다 보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쁘게 살다보니 해외의 여행을 다녀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미련은 없다. 바쁘다는 핑계 (여우의 신포도)로 다녀오지 못했지만 국내의 여행은 많이 다녔다. 1 백두대간, 9정맥, 19기맥 그리고 130여개의 지맥과 우리나라 약 8만 봉우리를 올랐고 자전거로 국토종주와 4대강 종주를 마쳤다.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선조들은 금수강산이라고 하지 않었던가.

  그녀는 토스카나를 여행하며 고즈넉하고 아득함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라지만 가다가 중지하는 것도 안 가는 것보다 낫다. 지치고 피곤하지만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산 지미냐노에 들어설 때 감흥은 자유로움의 절정을 느낀다. 올리브 나무와 사이프러스나무들이 아침 햇쌀에 번쩍이며 세포들이 하나 하나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듯하다.

  나는 새벽 3시에 한계령을 오르기 시작해서 서북능선을 타고 대청봉에 올라 동해에 뜨는 제우스를 맞이할 때 희열에 죽은 세포들도 꿈틀거리는 살아있음을 강렬하게 느끼곤 한다.설악산 정상에서 보이는 백두대간길과 주걱봉이며 공룡능선에 펼쳐진 그림을 가슴에 품을 수 없을 정도의 황홀함에 지쳐 말없이 눈물을 흘리곤 한다. 공룡능선의 선선봉에 올라 그 옛날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는 길을 바라 볼때 인생의 무상을 느끼며 나라를 잃은 태자의 슬픔에 다시 눈물을 흘리곤 한다.

  그녀는 이탈리아의 숨은 보석 거대한 바위산 "돌로미테"를 오르면서 북한산 백운대 오르기보다 훨씬 쉽지만 그곳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가지고간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을 수조차 없다. 태양이 키워낸 것들이고 신들의 솜씨라고 한다.

  나는 백운대에 오를 때, 이중환의 <택리지>, 장영희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가지곤 가곤 했다. 백운대 오르기 전 인수봉 전망대 양지바른 바위에 앉아 북한산을 종주했던 비류와 온조, 도선대사, 무학대사등을 생각한다. 그들은 나라를 세우고 나라를 유지하기 위한 천년대계, 만년대계를 꿈꿨던 역사의 인물들이다. 그들의 흔적을 찾고 역사의 틈을 파고들 의도는 아니지만 호연지기를 기르고 맑은 정신과 선한 마음을 위해 북한산을 오르곤 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북한산을 몇번 올랐는지를 물었다. 아마도 약 3천번 정도라고 답하곤 했다.

  그녀는 밀라노를 지나 코모호수에 대하여 강렬한 이미지는 남아있지 않지만 가없이 이어지던 푸른 물길과 호수 주변의 크고 낮은 산들, 그 물길 주변으로 단정하게 자리한 주황색 기와를 얹은 이쁜 집들이 생각난다고 한다.

  나는 삼국시대에 조성된 제천의 의림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가까운 가평의 쳥평호반과 호명호수에 오르면 한적한 바람에 이는 한적한 물의 흐름이 뭉쳤던 응어리를 부드럽게 펼쳐진다. 내 마음의 깊은 호수에 물비린내 없는 청정지역은 내 마음의 고향이다.

  그녀는 이탈리아의 설산 샤모니를 보며 잘생긴 남자는 자꾸 보면 지겹건만 설산은 암만 봐도 물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는 샤모니를 들어가며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추억을 쌓고 몽불랑을 오르며 눈부신 태양에 현기증으로 현실과 추억을 혼동할 수 있다.

  나는 겨울 연천 고대산과 금학산을 오르면 저 멀리 북한의 오성산과 김일성고지를 보곤한다. 치열했던 동족상잔의 비극의 현장에서 꽃다운 나이에 조국을 위해 산화한 선조들의 영령에 설화를 바쳐 목놓아 소리치곤한다. 이념이라는 굴레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에 고개조차 들 수 없는 죄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철원평야를 지키고 있는 매바위에 앉아 이념의 차이로 희생되었던 분들에게 초혼가를 불러 혼을 깨운곤 한다. 눈 쌓인 북한의 오성산을 바라보며 통일의 그날을 위해 나는 무릎꼻고 기도한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 우리는 여행에 광분하고 있는가? 우리는 왜 힘들게 산에 오르는가?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곳에 없는 것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잡을 수 없는 아름다움, 가지고 올 수 없는 아름다움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여행하고 산을 오른다." 그러나 요즘에 여행과 산을 오르는 이유는 자랑질하려고 가는 분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