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진 '정본 백석 시집'
백석
길상사
길상화 김영한, 자야, 나타샤

20세기 최고의 시인 백석. 그는 1912년에 평안도 정주에서 태어나서 1995년 그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시의 기틀 위에서 새로운 시의 문법을 세워 나감으로써 우리 시의 미학과 영역을 크게 넓혀 나갔다. 당시에 만연했던 호흡과 맥박이 살아있는 현대시에 백석은 시의 다양한 조직과 기관의 세포들을 살아있게 함으로써 활발한 생명력을 불어넣은 시인이다.
"흰밤"
녯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옛날 시골 초가집(귀틀집) 지붕에 박이 올려지곤 했다. 달이 지붕위에 뜨면 동네 개들이 짖어대곤 했다. 토끼가 절구에 방아를 찢던 동화같은 이야기에 고향이 그립다.
백석의 시들 중에 단연 돋보이는 시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데 이견을 내는 이는 거의 없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 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타샤는 백석이 사랑한 기생 김영한이다. 그는 김영한을 이백의 시 자야오가(子夜吳歌)에서 자야를 타서 '자야'라고 불렀다.
사랑하지만 기생이라는 이유로 백석의 집에서 반대하였고 1955년 김영한은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배밭골을 사들여 '대원각'이라는 한정식당을 연다. 1970년, 1980년대에 군부독재시절 권력층과 부유층이 드나들며 큰 돈을 번다.
그러던중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대원각을 길상사에 불사로 시주하기로 결심하고 법정스님과 10년 동안 시주와 거절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1977년 길상사로 거듭나게 되고 법정스님은 김영한에게 '길상화'라는 이름을 선사한다. 당시에 대원각의 자산 가치는 1천억원 대로 알려졌다.
김영한은 감동적인 말을 남긴다. "내가 시주한 천억원대의 돈은 백석의 시 한줄만도 못하다"
김영한은 매년 7월1일에 사랑하는 연인 백석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으로 하루 종일 음식을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날은 백석의 생일이다.
당시의 정제된 운울로 가지런한 시의 형식을 과감하게 뛰어넘어 사설체 형식의 시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당시의 한가지 감각 또는 공감각적 시의 흐름에 백석은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거의 모든 감각으로 시의 영역을 넓혔다. 또한 개인적인 정서 또는 자연을 백석은 삶의 핵심으로 끌여들였다.
그는 시의 혁명전사였고 민중시인이었다.

(백석) (김영한)
'시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류시화 '마음 챙김의 시' (2) | 2023.08.20 |
---|---|
류시화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2) | 2023.08.09 |
황인찬 시집 '희지의 세계' (3) | 2023.08.04 |
최복이 '사랑의 묘약' (0) | 2023.07.22 |
이성룡 '비자나무 숲에서' (0) | 2023.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