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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홍신의 '대발해'


김홍신의 '대발해' 전10권
김홍신의 '인간시장'에 이은 대작
대조영의 불꽃의지


660년 나당연합군에 백제는 역사에서 사라지고 668년 9월21일 고구려도 역시 나당연합군에 허무하게 무너진다. 20여만의 고구려 백성은 영주로 끌려가서 노비와 성노리개로 치욕스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대중상과 대조영은 군사 3,000을 이끌고 평양성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여 태백산(백두산)을 오른다. 식량은 바닥나고 혹독한 겨울은 찾아 오는데 빼앗긴 봄이 언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대중상 또는 대걸걸중상과 대조영은 발해의 기틀을 잡아가고 있고, 거란의 이진충과 손을 잡고 당과 대적하기도 한다. 당은 거란의 이진충을 제거하지만 대조영 일행은 요동으로 이동하고, 옛 고구려땅의 회복(고토 회복)을 준비하고 있다. 거란과 손잡았던 발해는 아아러니컬 하게도 926년 거란(요)에 의해 멸망하는 수모를 겪는다. 서서히 남북국 시대의 도래에 대한 서막이 시작되고 있다. 비록 대중상은 연로하여 다물에 대한 의식이 식어가고 있지만.

북두성을 삼킨 아이 대조영 그는 당에서 보낸 40만 대군을 맞아 7만 군사로 천문령에서 운명을 건 전투를 치른다. 후에 천문령대첩이라 한다. 대승을 거둔 대조영은 동모산에 수도 (상경용천부)를 정하고 발해를 세운다. 고구려의 제도에 당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고 나라의 기틀을 다진다. 당은 후에 발해를 해동성국이라 칭하기도 한다. 한민족의 남북국시대가 도래했다. 신라가 외세를 끌여 들이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덴데, 발해는 228년 동안 빛나는 문화를 자랑한다.

  대조영은 천문령대첩을 승리로 이끌고 동모산성에서 도읍을 정한다. 고금을 통해 왕좌를 위해 형제의 난은 피할 수 없었나 보다. 대무예와 대문예의 암투, 대문예는 아버지가 7만의 군사로 40만 군사의 당을 무찔렀던 천문령에서 전투 준비를 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대문예가 승리 했었더라면, 228년이 아니라 100년만에 멸망했을 수 도 있고, 500년을 지속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돌이킬 수 없는 법.

  대무예 발해의 2대 황제 대흠무는 당의 등주를 공격하여 당의 고구려 정벌의 전초기지를 빼앗고 요동지역을 차지함으로써, 당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백제와 고구려에 끼여 운신을 못한 신라가 당에 칭신하며 연합군을 결성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역사에 사라지게 했던 신라의 비굴함과 한반도의 처절한 슬픔에 대한 이야기에 가슴을 친다. 외세를 끌여들이는 자세는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진다. 잠시 장문휴 장군과 고구려의 실존 인물인 해군 여장군 연수영도 있듯이 대흠무는 소화 여장군을 발탁하기도 한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길 수 있음을 확신하며.

대흠무는 신하들과 기싸움에 들어간다. 당과의 긴장도 고려한다. 대문예의 아들 대청천은 대를 이어 모반을 획책하고 양소화로 하여금 보국대장군으로 임명하고 후궁의 오라비가 서경압록부 도독 공심지를 선참후계를 한다.

  용천부를 발견하고 천도를 계획하는데 반대하는 신하들을 설득하기도 하고 장문휴로 하여 반란을 일으키도록 획책한다. 왕권강화책으로 무명선사로 하여 진신사라를 구해오도록 하고 불교를 국교로 봉인한다.

황제 대원유는 식탐으로 몸무게가 120키로 나가고 어머니 오태후가 섭정한다. 오태후는 정적들을 잔인하게 숙청시킨다. 오태후의 야욕을 꺽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는 인물이 있다.그는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의 4대손인 대인수였다.

  권력의 맛을 들이면 벗어날 수 없는지 예로부터 지나친 권력으로 국가는 누란의 위기를 맞는 일이 많다. 대인수는 내실을 다지고 일본과 교역도 이루고 말갈, 돌궐과도 교류를 이룬다.

백제의 의자왕도 등극 초기에 해동증자라고 나라 안밖에서 찬탄과 두려움을 주었지만 황음무도한 행적으로 결국에서 660년 멸망하고 옹진(현 공주)에서 옹진성주의 배신으로 사로 잡혀 당으로 끌려갈 때, 충신 흥수, 성충, 계백의 간언을 듣지 않았음을 땅을 치고 통곡하지 않았는가, 발해의 마지막 황제 대인선은

  신하들의 간언을 무시하고 독단적인 통치로 나라 안밖에서 멸망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멸망은 조그만 틈으로 부터 시작되는 법.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거란의 작전과 철저한 준비와 강력한 기병으로 단숨에 발해를 멸망시켰다. 송나라도 거란(후에 요나라)에 의해 멸망의 위기까지 갔다. 결국 926년 1월14일 227년 1개월만에 발해는 거란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남북국시대를 이루었던 신라와 발해, 그리고 고려를 세운 왕건은 발해의 영토를 회복했었더라면 현재 동북공정을 외치며 발해도 자기네 지방제후국이라고 외치고 있는 중국을 향해 우리도 큰소리칠텐데, 고려, 조선은 위정자들의 잘못으로 사대주의 사상을 선비들의 머리 속에 박혀 한민족의 긍지를 버리지 않았던가. 타는 가슴으로 우리는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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