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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창동 '집념'

금호 아시아나 박인철
이창동 '집념'
광주여객

  현대 정주영 자서전, 대우 김우중의 에세이 자서전에 비해 <집념>은 소설이지만 한편의 장엄한 서사시이다.

  일제강점기에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소 판돈으로 일본으로 건너 갔다가 3년 만에 현해탄을 건너와 수많은 시련과 실패를 거쳐 순사(경찰) 시험을 보기 위해 5년 동안 법조문을 달달 외워 순사에 합격하고 20년동안의 순사 생활을 접고 사업을 시작한다. 1946년 택시 두대로 시작한 박인천은 광주여객으로 서울까지 진출하는 동안 끈기와 인내 그리고 불굴의 정신으로 수많은 난관과 좌절을 겪으며 대기업의 반열에 올라섰다.

  6.25때 인민군에 의해, 그리고 자유당 국회의원에 밉보여 경영난을 겪기도 하고 군사정권에 이유없이 구속되기도 했지만 오뚜기처럼 광주여객 마스코트 거북이 처럼 그렇게 느리지만 꾸준히 일어나서 재기하곤 했다.

  실패없는 성공은 의미가 없다. 수많은 좌절과 고난 끝에 오늘날의 금호고속, 금호타이어, 금호아시아나로의 성장은 오뚜기처럼 일어났던 박인철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비록 1990년 국제선 첫 취항을 보지 못하고 1984년 84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 했지만 그의 불굴의 의지는 금호를 떠나 우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금호고속 이전에 광주고속을 타고 다녔던 기억이 박인철회장을 생각나게 한다.  그의 후손 박삼구회장이 금호아시아나를 말아 먹은 사실에 지하의 박인철 회장이 벌떡 일어날 일이다.

  박인철 회장이 성공했던 가장 큰 이유는 순사시험을 치르기 위해 5년 동안 공부했던 법률 지식 때문이다. 배워야 산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말이 있다. 요즘 배부른 돼지가 낫다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나도 젊은데 3년 전에 접었던 사업을 다시 시작혀 말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했던 햄릿이 생각나는 밤이다. 오늘도 창밖의 보름달은 밝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