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흑백) 시화집 울란바타르 소곡(小曲)
이정현 (흑백) 시화집
울란바타르 소곡(小曲)

시와 언어는 분리된 듯 하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시어를 선택할 때 조지훈은 <승무>에서 '파르라니 깍은 머리'를 150번 쓰고 지우고 고쳤다고 한다. 김삿갓은 시 한 편을 짓는데 1각이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의 기능은 무엇인가. 시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파고 들어 희노애락을 주관한다. 때로는 격정적인 감동을 주고 때로는 잔잔히 흐르는 강물처럼 무심함을 주기도 한다.
시를 읽는 방법은 존재하는 것일까. 시를 접할 때는 목욕재개하고 단정히 앉아 정갈한 마음으로 읽는 것이 아니다.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저 손에 잡힐 때 또는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 앉아서 아니면 흔들리는 단풍잎을 따서 시집에 꽂아 표지라도 읽는 것이 시를 읽느 방법이다.
이정현 시화집 <울란바타르 소곡>에 있는 시는 읽는 이로 하여금 미술관에 간 시인의 느낌을 갖게 한다. 시는 지식, 상상력과 경험이 어우러졌을 때 꽃이 피어난다. 그는 시에 예술과 소설적 기능을 부여했다. 그의 흑백사진에 나타난 자라섬의 풍경을 보면 그의 순수하고 순백한 서정성을 볼 수 있다.
표지에 나타난 푸른 이리의 혼에 몽골의 기운과 솔롱고스의 고요함이 베어 있는 듯 하다.
"바람이 많이 불던, 몹시 추운 겨울이었다.
시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기쁘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에게 시는 생활이었고, 삶의 중심이었기에 일상처럼 시는 세끼 식사처럼 여겨졌다. 역설적으로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막막했던 순간 떠오른 시어에 너무나 반가워 오히려 기분은 차분했을 지도 모른다. 시는 그렇게 느닺없이 찾아오곤 한다.
"사막을 건너 천년을 불어온 바람이 도시를 지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톨강(江)은 어둠에 잠긴 울란바타르를 말없이 흘러갔다."
바람은 지구가 살아있고 도시가 살아있고 사람이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바람은 산소를 운반하며 그리움조차 전하는 기능을 한다. 천년은 지구의 생성 이후로 거쳐온 시간의 상징이다. 울란바타르의 소곡을 읽으면 우리는 몽골의 풍습과 지형을 알 수 있다. 몽골을 다녀온 느낌이 든다.
사람됨은 자연에서 길러진다. 물과 바람, 그리고 산소의 고장 가평에서 시의 육신을 길러온 이정현의 시화집 <울란바토르의 소곡>을 읽고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