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문 소설 '별을 묻던 날'
박기문 소설 '별을 묻던 날'

안동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니고 서울로 유학왔던 박기문의 성장소설이자 60년대 70년대를 지방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추억을 소환할 수 있는 고향의 향기가 나는 소설이다.
그는 '겉모습은 늙어가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고 싶은 이들을 위해 이 글을 바친다.'라고 썼다.
가난해서 눈동자조차 흐리멍텅하게 보냈던 그 시절의 이야기, 지방 순회공연을 했던 서커스, 학교에서 배급으로 나눠줬던 옥수수빵을 문둥이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내달렸던 이야기, 서울에서 전학온 아이, 밥상던지기 등 우리들의 옛날 이야기기 고스란히 살아나고 있다.
우리 아버지도 승질부릴 때 밥상을 던지곤 했던 때가 있었다. 그 불같은 성격을 가졌던 분이 지금은 영면에 들어가신지 20년이 넘는다. 조만간 찾아 뵈어야 겠다.
안동의 간고등어가 왜 유명한지 이제 알듯하다. 안동이 워낙 오지라서 바다에서 안동까지 오는데 며칠이 걸리기 때문에 고등어가 상해서 미리 소금에 절여 운동하기 시작했던 것이 안동고등어라 한다.
안동은 낙동강을 끼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어린 시절에 수영은 필수다. 나도 만경강의 지류(호남평야를 가르는 거대한 농수로 - 똘이라 불렀다)에서 수영은 여름의 유희였고 오락이었다. 5학년이었던가 6학년이었던가 여름 방학식 날 우리는 집에 가는 도중에 10명 정도가 강둑에서 앉아 있었고 3명 정도는 물속에서 수영하고 있었다. 그 당시 장마철이 되기 전에 물의 흐름을 원할하게 하기 위해 강바닥을 깊게 파곤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수영하다가 한 명이 가운데에서 머리가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한다. 그 때 다들 아무생각 없이 보기만 했다. 아마도 강가에 사는 아이들이라 다들 수영할 줄 아는 것으로 여겼던 거 같다. 나는 그의 눈빛을 보고 뛰어 들었다. 그 때 그 친구가 구하러 간 나를 엄청난 힘으로 붙잡아서 둘다 물속으로 잠겼다. 나는 '이래서 물에 빠진 사람 구하려다 같이 죽는구나'생각하며 정신을 차리고 물속에서 기어서 가까스로 물가로 나왔다. 물론 그 친구는 내 몸을 꼭 잡고서. 그 후로도 몇번 물에 빠진 다른 사람을 구한 적이 있지만 무턱대고 뛰어들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많은 부분을 생각나게 하는 박기문의 소설에 어린 시절의 고향에 있었던 이야기와 배곯던 그 때, 어려웠지만 그 시절이 그립다. 소설속의 초등학교 전교생이 500여명이고 나의 초등학교 전교생도 500여명, 그 ㅅㅇ초등학교 동창들이 지금도 끈끈히 연을 맺으며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여학생들과 몇마디 이야기만 해도 '얼레 꼴레리 누구 누구랑 연애한데요' 그랬었는데 중학교에 서울로 유학와서 남학생과 여학생이 이야기 뿐만 아니라 손잡고 다니는 걸 보고 뒤집어졌다.
소금빛향기의 '상실이 시기'
나는 김유정의 “동백꽃”과 황순원의 “소나기”를 싫어하는 이유가 있다. 보리밭은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 나 혼자만 평생을 갖고 싶은 추억이 담겨있다. 토속적인 미학이나, 향토적인 미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어린 시절 나에게는 소중하고 담백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자 한다.나는 어린 시절 시골, 익산에서 가난에 허덕이며 보낸 기억밖에 없다. 공부는 둘째이고, 모내기, 김매기, 벼배기, 등등. 나에게는 시골이란 우리 민족의 민중들의 삶이 그러했듯이 굶주림의 삶이었다. 그래서 배가 고파 초등학교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게 되지만 그것은 나중 일이었고, 어느 날이 었던가 6학년때 나는 늦게 학교에서 끝나고 집에 돌아오고 있었다. 옆 동네 사는 여학생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 때 늦게 끝났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아무튼 산을 넘고 내를 건너 또 산을 넘고(참고로 집과 학교는 10리 정도 될까. 당시에는 그렇게 느껴 졌으니까). 산을 넘은 다음에는 드넓은 밭이 나오는데 한참 그 여학생을 따라 가는데...아니...원래 길이 아닌 보리밭으로 들어가는게 아닌가...이상한 생각이 드는 순간...그 여학생이 갑자기 멈추고 뒤돌아 서서 나를 보리밭 사이로 넘어 뜨리는 것이 아닌가..13년동안 고이 간직한 나의 순결, 내 인생에 첫 키스를 도둑 맞은 거 아닌가...그 때...처음 알았다...여자 냄새는 틀리다는 것을...그 여학생(동백꽃의 점순이가 아님)의 분내하고, 보리의 싱그러운 냄새가 어우러져 머리가 어지웠다...내가 음식 중에 대구찜, 아구찜,,,,찜....들어가는 음식을 제일 싫어하는데...(그 이유가 여기서 태동됨)...그 어지러운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그녀는 “찜”이라고 하는게 아닌가....한 동안 둘이 말 없이 보리밭에 앉아 무슨 말들 인가 나누었는데,,,지금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오직,,“, 찜”이라는 그 당시에 나는 순결을 잃었다는 죄책감에 가슴이 천근이나 무거웠다...둘이서 보리밭 사이로 난 이랑을 따라 내려 올 때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것이 아닌가...그런데 어느새 건너야할 개울에 총총이 놓여있던 돌 징검다리가 넘치는 것이 아닌가...난 그녀를 업고 시내를 건넜다..소나기를 맞고..무슨 축복인지..불행의 전조인지는 모르지만...집에 오자. 어머니께서, “애!” “너는 물감도 없는 애가 등에 물감을 뭍히고 다니니...” 아뿔사...그녀가 따서 나에게 준...들꽃이 그녀를 업을 때 등에 짓눌려 옷에 베어 버린게 아닌가...그녀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그런데..내가 가장 약한 것은 호랑이도 아니고 굶주림도 아니다...여자의 눈물이 나는 가장 약하고 무섭다...지금도 여자가 내 앞에서 울면 나는 가슴이 터진다..내가 가난에 허덕이고 시골에서 땅 한줌도 없는 농부로 살아간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서울로 올라 오기로 결정한 날...그녀에게 말했다...그녀는 밤새도록 울었다...아마 두루마리 휴지로 닦았으면 10통 정도는 필요했을거다...내 마음속에 몇 번이나 갈등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녀는 서울가면 편지 자주 하라는 말과.....지금도 가슴이 타는 말....“너는 나의 情人이야...너를 위해 매일 밤 장독에 정한수 떠놓고 빌어 줄거야....”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의 이야기가 김유정의 손에 “동백꽃”으로 황순원의 “소나기”로 아름답게 문학으로 된 것이 아닌가...(물론) 위의 작품들이 내 이야기 보다 먼저 쓰여졌음...나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동백꽃”과 “소나기”속에 살아가는 나는 언제 나의 정체성을 찾아 참다운 익염공으로 살아갈지... 참고로....정말...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하리수”다. 서울에 상경하자 마자, 한강의 위용을 보고 감탄했다. 한강의 옛이름...(역으로...한강 - 한수 - 아리수) 나의 호를 “아리수”불렀다...헌데 어느 날....이상한 놈(이제는 놈이 아니군...)이 나타나 자기 이름이 하리수란다...그러니...내가 아리수라고 하면...거참 이상한 놈이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옛날 할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을 상기시켜서...익염공(이로울 익, 소금염) 해서 세상의 이로운 소금이라 했다. 20여년 전부터 익염공(益鹽公)이 발음하기 힘들다고 해서 소금빛향기로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