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황인찬 시집 '희지의 세계'

소금빛 향기 2023. 8. 4. 23:21

황인찬 시집 '희지의 세계'

  1988년생 황인찬은 박력과 패기로 시 세계에 들어와서 그 박력을 가지고 저돌적으로 시를 쓰고 있다. 시라는 매너리즘을 벗어 버리고 옆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과감하고 어떤 시적 기교없이 현대의 다다이즘을 구사하고 있다.

  흐르는 땀을 의식하지 못하는 채로 새인지 벌레인지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채로 숲길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채로

  이 여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여름 연습 64p -

이번 여름은 사건도 많고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이성이 더위를 통제하지 못하고 더위에 의해 조종 당하고 있다. 매년 더위 연습을 하는데도 우리는 슬기롭게 더위를 지나치지 못하고 있다.

  저녁과 겨울이 서로를 만난다
  누가 볼까봐 두려워하며
  겨울이 저녁을 움켜쥐고
  저녁이 약간 떨고
  그 장면은 기억에 남는다
    ---은유 78p ---

은유법이라는 용어를 본지도 참 오래되었다. '내 마음은 호수요' 많이도 외웠던 은유의 대명사. "너무 어린 나는 늙어간다. 늙어 버릴 때까지 늙는다." 마음에 드는 귀절이다.

  황인찬 시인은 산문시 형식을 빈 시들이 많다. '종로'에 대한 시를 많이 썼다. 나에게 종로에 대한 글을 쓰라면 몇년을 써도 다 못쓸 이야기가 많다.

  종로에 대한 나의 산문시를 써본다.

"종로삼가의 담배 꽁초"

1974년 월남이 패망했다. 14살의 너는 종로 3가에 갔다. 월남 패망에 대한 호외가 거리를 덮었고 너는 갑자기 담배 생각이 났었다. 가판대에서 팔고 있는 까치담배(담배 1개피)를 살 돈이 없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마침 건너 편에서 한 신사가 담배를 꺼내서 한 모금 빠는 모습에 보기만 해도 황홀했다. 그런데 피우던 담배를 버리고 택시를 탄다. '이야! 탱 잡았다. 신호야! 빨리 바뀌어라. 저 초장초 담배는 내꺼다. 불을 빌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신호가 바뀌고 막 건너가려고 하던 그때 화물차 한 대가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가며 그 장초를 깔아 뭉개버리고 지나갔다. 황홀함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너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놀라서 모여들고 병원에 가보라고 난리였지. 그 기억으로 너는 담배를 끊지 못했었지. 지금은 금연 15년차 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