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병주 '산을 생각한다'

소금빛 향기 2023. 7. 12. 21:14

이병주 '산을 생각한다'
북한산, 도봉산, 예봉산, 설악산, 지리산

  나는 북한산을 3,000여번을 올랐고, 설악산도 300여번을 올랐지만, 이병주의 <산을 생각한다>를 읽으며 반성하고 있다. 이 책은 <산 그리고 인문학>으로 책명을 바꿔도 좋을 정도로 산과 관련한 인문학으로 박학다식하고 그의 다방면에 대한 연구에 대한 지식이 부럽다. 물론 현대 최고의 지성으로 추앙받고 있다. 나는 그의 <지리산>을 읽으면서 파르티잔(빨치산)에 대하여, 그리고 지리산에 남겨진 그들에 대하여 박식함을 보여줌으로써 나를 놀라게 했다. <지리산> 전 7권을 읽는 동안 그의 문학적 소양, 해방전과 그 후의 지리산에서 투쟁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에 밤새는 줄도 모르고 읽은 적이 있다.

  산 아래는 이렇게 어수선한데 산은 언제나 조용하다. 산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건 말건 산 위의 하늘은 청명하기도 하고 구름이 깔리기도 하고 간혹 비와 눈을 뿌리기도 하지만 산은 의연하게 수목들의 침묵을 스스로의 침묵으로 하고, 새들의 노래와 풀 벌레 소리를 스스로의 가락으로 하여 변함없이 우아하고 아름답고 눈물겹도록 다정하기만 하다. 인간이 귀의(歸依)할 곳은 산밖에 없다. 산에 귀의 한다는 것은 영원에 귀의하는 것이다. 네 인생을 충전하게 하려면 너는 산이 되어야 한다.

  북한산, 도봉산에서 인생을 알고 철학을 찾고자 하는 이병주는 때로는 관능적이고 심미적인 산정을 바라보며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시간의 개념을 생각하기도 한다.

  설악산에 간다는 것은 설악산만을 보러가는 것이 아니고 설악산을 중심으로 한 우주의 신비에 참입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산을 오를 때는 심장의 운동이며 내릴 때엔 신경의 운동이란 것을 깨달았다. 공룡능선을 타면서 "칸트의 철학이 공소하고, 마르크스의 철학이 달갑지 않는 것은 그 사상이 육체를 무시한 정신의 추상(抽象)에서만 비롯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예봉산 수종사에 올라 새천년의 대한민국을 위해 외치고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민족의 염원 조국통일의 찬가를 부르기도 했다.

  두보의 <망악望嶽>에서 그는 주위의 산을 보기 위해 산으로 간다고 했다.
  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

내 반드시 태산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뭇 산이 낮음을 내려 보리라

나는 딱 한 글자만 바꾸어 말하고 싶다.
會當凌絶頂
一覽衆山在

내 반드시 산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뭇 산이 있음을 바라보리라.